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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촌방향

서촌에 처음 와본 사람들은 서울에 이런 동네도 있냐고들 한다. 청와대와 밀접해 개발 제한이 있는 덕분에 한옥과 골목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고, 경복궁과 어울려 도시 같지 않은 예스러운 동네 모습을 보고 방문객들은 감탄을 금치 못한다. 뿐만 아니라 건축물 고도제한이 있어서 인왕산과 북악산의 능선이 고스란히 보이고, 서울 시내에서 하늘을 시원하게 볼 수 있는 몇 안 되는 동네다. 깊이 있는 음식은 천천히 먹을수록 그 참맛을 느낄 수 있다. 서촌에는 볼거리와 즐길 거리 외에도 가슴 깊이 느낄 거리가 있는 곳이다. 나는 30년 동안 살아온 서촌 토박이로서 서촌을 찾는 방문객들이 그저 수박 겉 핥기 식으로 경복궁과 청와대만 보고, 인터넷에 알려진 유명 맛집만 왔다가는 것이 안타깝고 아쉬웠다. 사람들이 가끔 나에..
서촌에 처음 와본 사람들은 서울에 이런 동네도 있냐고들 한다. 청와대와 밀접해 개발 제한이 있는 덕분에 한옥과 골목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고, 경복궁과 어울려 도시 같지 않은 예스러운 동네 모습을 보고 방문객들은 감탄을 금치 못한다. 뿐만 아니라 건축물 고도제한이 있어서 인왕산과 북악산의 능선이 고스란히 보이고, 서울 시내에서 하늘을 시원하게 볼 수 있는 몇 안 되는 동네다. 깊이 있는 음식은 천천히 먹을수록 그 참맛을 느낄 수 있다. 서촌에는 볼거리와 즐길 거리 외에도 가슴 깊이 느낄 거리가 있는 곳이다. 나는 30년 동안 살아온 서촌 토박이로서 서촌을 찾는 방문객들이 그저 수박 겉 핥기 식으로 경복궁과 청와대만 보고, 인터넷에 알려진 유명 맛집만 왔다가는 것이 안타깝고 아쉬웠다.

사람들이 가끔 나에게 서촌의 매력을 물으면 나는 이렇게 대답하곤 한다. “서촌은 힐링 플레이스healing place다. 서촌에는 우리의 지친 마음을 달래주고 치유하는 힘이 있다.” 그리고 힐링 플레이스의 근원은 바로 골목길이라고 생각한다. 이 길에서 우리는 모진 풍파를 견디고 버티며 힘겹게 살아왔던 시간 동안 잊고 지낸, 이제는 다 사라졌을 거라고 생각했던 추억과 순수함이 남아 있음을 발견하고, 그것에 정화되는 것이 아닐까? 오늘도 난 서촌 골목길을 걸으며 위로받고 치유 받는다. 기나긴 겨울이 지나고 조만간 봄이 올 것 같다. 골목을 걷기엔 더없이 좋은 계절이다.

인왕산의 높이는 해발 338미터다. 한달음에 오르기에는 약간 벅차고, 등산복 제대로 갖춰 입고 오르기에는 낯간지러운 애매한 높이다. 인왕산을 오르는 코스는 여러 가닥이다. 어느 쪽으로 오르든 한 시간 남짓이면 정상에 서고 두 시간 정도면 산행을 끝낼 수 있다. 몸풀기에 딱 좋은 정도다. 하지만 산 전체가 화강암으로 구성되었고 구간에 따라 경사도 매우 가파르기 때문에 만만하게 볼 수만은 없다. 높이는 낮지만 산세가 험한 편이고 군데군데 바위가 많아 우리나라초기 산악인들의 좋은 등반 훈련장이었다고 할 정도니 말이다. 인왕산은 1968년 발생한 김신조 일당 무장공비 침투사건으로 출입이 전면 통제되었다. 간첩들이 청와대를 습격하기 위해 인왕산 옆 산길로 질러왔기 때문이다. 그 후로 25년 동안 평온한 잠을 잔 인왕산은 김영삼 정권 시절인 1993년 3월 25일 다시 일반인에게 개방되었다. 당시 초등학생이던 나는 인왕산이 재개방되던 날, 바글바글한 사람들 틈에 끼어 아버지의 손을 잡고 처음으로 정상에 올랐다. 동네 어르신들 말씀을 들어보니 예전에는 나무가 거의 없는 헐벗은 산이었는데 지금은 숲이 대단해졌다고 한다. 그 뒤 인왕산은 2007년에 ‘서울시 생태경관 보전지역’으로 지정되었다. 수려한 자연경관을 이유로 보전지역으로 지정하는 것은 인왕산이 전국에서 처음 있는 일이라고 하니, 인왕산의 경치는 나라에서도 인정한 셈이다.
서촌 지역 이야기꾼으로 불리기를 꿈꾼다. 서촌에서 태어나 30년째 살고 있는 철없는 도령이다. 동네가 점점 변해가는 것이 안타까워 2009년부터 서촌을 알리고 기록하기 시작했다. 건강과 경제적 문제로 여러 고비가 있었지만, 그래도 다행히 이 일을 알아봐주는 분들이 있어 지금까지 하고 있다. 현재는 퇴출 위기에 있던 서촌의 마지막 청소년 오락실인 ‘용 오락실’을 인수해 지역문화 창작공간으로 사용하며, 그곳에서 서촌의 문화와 예술에 관한 스토리텔링 발굴 및 동네 소식지 발간, 골목답사, 출판물 발행, 웹툰 및 영화 시나리오 기획 등을 하고 있다. 그저 좋아서 시작한 일이 2012년 서울시가 뽑은 ‘국내 이색직업 50개’, ‘미래굿잡(good job) 100개’에 선정되기도 했다. 서촌에서 하루하루 감사할 일이 많아져서 행복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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